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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이야기

지난 역사의 반성일까?

일본이 일제시대의 강제노역에 대해서 인정을 했다는 기사가 어제 떴습니다. 근대산업시설이 세계유산에 등재가 결정된 직후의 회의 석상에서 1940년대 일부시설에서 한국이과 여타국민이 본인의 의사에 반하여 동원 되어 가혹한 조건 하에서 강제 노역을 했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피해자들을 기리위한 적절한 조치를 하겠다는 기록이 남았다는 군요. 토의 요록이라고요. 7월에 공개된 결정문이고 우리 정부를 포함 관련국들이 회람도 하였다고 합니다.

오늘 이 기사들이 여러곳에서 올라오는 걸 보면서 다행이다라는 생각과 위안부할머니들께는(위안부라는 말 안해야 하는데 죄송합니다.) 언제 사과를 할것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난 8월 15일에 방영된 최후의 심판을 보았습니다. 같은 여자로써 인간으로써 그 끔찍한 시간을 견디며 살아오신 그분들께 차마 한마디도 할 수 없더군요. 여자로써 수치스러워서 차마 꺼낼수 없었고 내자식에게 해가 될까 말할수 없었고 그 기억이 너무 끔찍해서 기억하기 싫었다.....

차라리 죽고 싶으셨겠지요. 그 지옥에서 견디는것은 하루하루가 고역이였을 것입니다.고향이 어디쯤인지 가늠이 되지 않았을것이고 부모 가족이 보고싶었지만 갈수는 없었다고 하셨습니다. 도망가다 죽은 언니 동생들도 보았다고 하셨지요. 그리고 살아있는 사람의 생살을 찢고 지지고 때리고 자신들의 뒤틀어진 욕망을 어리고 여린 소녀들에 풀었던 인간들도 있었다고 하셨지요.

 예전에 외할머니께서 이야기 해주신게 생각납니다. 할머니께서 초등학교 1학년때인가 2학년때 일본인선생들이 5~6학년 언니들을 운동장에 불러두고 공장에 취직시켜준다고 해서 데리고 갔다고 나중에 알고보니 위안부로 간거라고 하셨습니다. 그런 거짓말로 한참 사춘기 소녀들을 강제로 모아 보낸 것이지요.

현냥이도 중학교시절 나눔의 집이라는 시설이 광주에 생겨서 봉사활동을 다녀왔습니다. 제 기억에 3번 갔었는데 정말 좋은 분들이셨습니다. 간사님께서 봉사활동 하라고 지정해주시고 가신후 할머니들께서 빠르게 해주시고 우리랑 놀자고 하셨습니다. 옆집 할머니처럼 우리 할머니처럼 웃으며 이야기도 해주시고요. 간식도 주셨습니다. 그게 벌써 20년 전 일이 되어가네요. 그때 그자리에서 웃으면서 이야기 나누시던 분들 없으십니다. 그리고 지금 계신분들은 얼마나 더 이땅에 계실까요? 그분들은 돈을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그때일은 저희 잘못입니다. 이거 하나라고 하십니다.

다큐멘터리를 보는내내 눈물과 막막한 가슴이 정말 어찌 할수가 없었습니다. 지금 다시 꺼내고 보니 가슴이 막막하고 눈물이 흐릅니다. 수요일마다 일본대사관 앞에서 수요집회를 해도 그들은 끄덕 하지 않더군요. 비가오나 눈이오나 집회를 하시는 남은 할머니의 마지막 집회가 어서 왔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일본이 진정으로 지난 역사대한 반성이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