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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이야기

하남시 유적지를 찾아서 1탄 춘궁동 동사 3층, 5층석탑

 

 

 

유적지를 찾가는 길을 봤으니까 이제 유적을 찾아 가볼께요. 하남시 유적지를 찾아서 1탄

춘궁동 동사 5층, 3층 석탑입니다.이곳의 위치는 이성산 남쪽 고골저수지 옆의 야산기슭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고골낚시터 정류장에서 약 10분~15분 정도 거리 입니다.

 

 

 

 

이곳은 고려초기의 대규모 절터인 광주동사지입니다. (사적 제 352호) 1988년 판교~구리간 고속도로 건설 당시에 동국대 박물관에서 발굴조사를 하였다고 합니다. 10세기경에 새롭게 지어졌으며 이곳에서 각종기와류와 청동불기류 및 도자기등의 많은 유물이 출토 되었는데요. 그중에 동사라는 명문이 새겨진 기와가 발견 되어 이곳에 있던 절의 이름이 동사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다보사라는 작은 절이 있습니다.

 

금당 터는 현재 대웅전 주변에 있는 넓은 평지로 약 2m 높이의 반듯하게 다듬은 터에(이걸 기단이라고 합니다.)게 다듬은 사각의 초기 돌들이 있는데 이모습으로 미루어 금당은 정면은 7칸,측면은 6칸의 2층 불전이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규모로서는 신라시대 경주 황룡사의 금당에 버금 가는 규모라고 합니다. 금당 중앙 본존불 가장 아랫부분의 하대석으로 생각 되는 팔각석재가 남아 있다고 합니다. 지름 또한 5.1m터에 달해 당대 대 규모로 판단 된다고 합니다.

금당터 동편에는 춘궁리 3층석탑(보물 제 13호)과 5층석탑(보물 제 12호)이 나란히 서있어 금당이 쌍탑을 마주고 하고 남동향으로 배치되 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현냥이가 초등학교때 소풍 갔을때는 이런 규모인지 모르고 넓어서 뛰어 놀기 좋구나 싶었어요. 쌤이 설명해주셨을 건데 초등학생이 게임 상품에 눈이 멀고 넓다란 터에 노는데 정신 팔려서 뭘 알았겠어요?

중학교 국사시간 발표때 조사할때도 사진 찍고 베끼기에 여념이 없어서 몰랐는데 이제는 보이네요.

고려초기의 대형 절을 어찌 지었는지 알수 있는 아주 귀중한 자료에요.

 

이제 석탑을 살펴 보겠습니다. 안타깝게도 두개의 석탑중 3층석탑은 윗부분이 소실이 되어 있습니다.

 

 

 

이번에 갔을때 다행이도 3층석탑의 복원작업 중인것 같았어요. 3층 석탑에 비하면 5층 석탑은 보존이 꽤 잘 되어 있는 편이지요?

 

3층석탑은 2층의 기단(반듯하게 다듬어 둔 석탑돌부분 가장 아래를 뜻합니다.)에 3층의 탑의 중간 부분과 상륜 (윗 장식 부분)을 세운 고려시대 탑으로 높이는 3.6m입니다. 기단의 아래층이 일부 매몰 되었고 탑은 상륜이 없으나 그외에는 보존이 잘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고려시대 초기이다 보니 신라 석탑의 모습을 계승 면을 보인다고 합니다.

 

5층석탑은 3층석탑과 동일한 방식으로 높이가 7.5m에 다랍니다. 5층석탑은  경기도권에서 드물게 큰탑에 속한다고 합니다.

 

 

 

 

위에 사진의 내용을 바로 위에서 풀이해서 적어뒀습니다. 현냥이 나름 해석해서 옮겨 봤는데 이해가 되시나요?

 

 

 

비석에 광주군 춘궁리 5층석탑이라는 써 있어요. 이 비석은 3층과 5층 사이에 세워져 있습니다. 3층석탑은 공사중이라서인지 보이지 않았습니다.

 

 

 

다보사의 불당입니다. 중간에 4개짜리 문 맨 왼쪽으로 불상이 보이시나요? 저 앞에 국화들은 불자들이 가져다 놓은 소원의 화분이랄까요? 화분에 소원 종이가 적혀 있었습니다. 기왓장에 연등에 쓰는 건 봤는데 화분은 처음 봅니다.

 

 

 

 

다보사 벽에 그려진 탱화입니다. 현냥이는 불자가 아니라 모르겠는데 마지막에 하얀 무언가를 타신분 보이시나요? 하얀 코끼리입니다. 그리고 머리에 하얀 원은 광배라고 하는 기를 표현 한것이라고 하는데요. 부처인가봅니다.

부처의 어머니태몽이 하얀 코끼리라고 들었거든요. 맞나요?

기둥끝에 커다란 창 보이시나요? 예전에는 작은 암자??? 였는데 증축을 했더라구요.

 

 

 

감로수라고 하죠? 절에 있는 약수요. 관음보살상과 아기동자들이 아기자기 귀여워 보여서 한컷 찍었습니다.

 

 

감로수입니다. 저기 거북이가 입에서 뿜어서 연꽃으로 흘러 들어가면 옆에 대롱 같은 곳으로 흘러 나왔죠?

선법사의 약수도 식수금지라고하더라구요.

예전에 할아버지, 할머니를 따라 동네 다른 절에 가면 저 감로수를 마시곤 했어요. 감로수도 추억의 뒷편으로 사라져 버리네요.

 

 

 

전에 없던 변화가 좀 있었는데요. 중학교때 왔을때만해도 여기는 나무가 우거져서 어두침침했거든요. 나무도 베어내고 아담한 원두막이 생겼네요.

 

탑산동 석탑의 전설이라고 이곳의 이야기랍니다. 들려 드릴께요.

백제 근초고왕 25년 법화골에 예선과 갑분이라는 두쳐녀가 살았대요. 둘은 친자매 이상으로 우애가 깊어서 남들이 보기에는 기이할 정도로 다정했다고 해요. 둘은 자라서 혼인 할 나이가 되었고 두 처녀의 부모들은 딸들의 혼인시킬 준비를 하면서 은밀히 신랑감을 찾았답니다. 하지만 젊은이들은 거의다 싸움터로 나가고 신랑감은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해요. 당시 고구려, 백제, 신라는 영토분쟁이 그칠날이 없었었거든요. 그때 싸움터에서 팔하나 잃고 고향으로 돌아온 청년이 있었대요.

혼기를 아주 놓치게 될까 예선이네 집에서는 서둘러서 그청년과 혼인을 시키게 됩니다.

예선이는 갑분이에게 혼인후에서 우의를 잊지 말고 매일 만나자고 하고 갑분이는 우려를 합니다.

하지만 예선은 남편에게 간곡히 청을 하여서 갑분이가 혼인 할때까지 살게 해달라고 하고 그의 남편은 어려운일이 아니라고 하며 흔쾌히 같이 살게 됩니다. 남들이야 이상하게 생각 하든 말든 세사람은 화목하게 살아갑니다.

그러던 어느날 갑분이는 예선이에게 이대로는 평생 농사꾼 신세를 못 면 할것이다. 그러니 그녀의 남편이 공부하여 벼슬길에 나가는 것이 어떠냐는 제안을 하게 되요.

이말은 들은 예선은 남편을 설득하여 공부를 하게 하고 예선과 갑분이 농사일을 도맡습니다.

그렇게 두여자의 지원과 남편의 피나는 노력 끝에 남편은 벼슬길에 오릅니다.

호사다마라고 고생 이제 끝이라고 생각 했던 예선이 중병에 걸립니다. 남편과 갑분의 간호에도 그녀는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예선은 죽기전에 남편에게 먼저 가는 자신의 죄가 크니 자신이 죽은 뒤 갑분과 혼인 하여 살아달라고 말을 하고 갑분에게도 남편과 결혼하여 행복 하게 살아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러나 둘은 한집에 살았어도 남녀의 마음을 품은 적이 없었습니다.

남편은 예선이 죽은 뒤 갑분에게 혼인 하자 하지만 갑분은 예선과 평생 살기위해 고락을 함께 한것이니 그리 할수 없다고 합니다. 바랄 것이 없는 갑분은 남편의 곁을 떠나려고 하지만 남편은 자신과 혼인을 하지 않아도 좋으니 다른곳으로 가지말라고 하고 혼인은 없던일로 했습니다. 얼마후 갑분은 예선이 세상을 등지고 외로움과 허무감에 휩싸여 머리깎고 산으로 들어 가고 말았습니다. 뒷날 마을 사람들은 예선과 갑분의 숭고한 우애를 귀감으로 삼고자 마을에 석탑을 두개 나란히 세웠는데 이것이 바로 춘궁동 3,5층 석탑이라고 합니다.

 

어제는 다른 분 블로그에서 씁쓸한 글을 보았습니다. 친구였던 이가 당사자를 죽음으로 몰아 넣었다는 글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이야기가 더 마음에 와 닿는 가 봅니다.

 

벌써 주말이 코앞이네요. 날씨도 선선한데 가족들과 바람쐬보는 것도 좋은 것 같아요^^